걸으며 생각한 것들 (4)

김재원

·

2021. 3. 6. 17:45

홍제천에서 © 읽고.걷고.쓰고

1. 꾸준히 읽고 걷는 게 삶에 적절한 ON/OFF 스위치가 되어주는 것에 깊이 감사해하는 요즘이지만, 24시간으로 한정된 회사원의 하루에 마음껏 읽고 걷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읽기와 걷기를 동시에 할 수 있으면 더없이 좋겠지만, 내가 사는 동네는 도심 한가운데이기 때문에 항상 차와 자전거, 전동 킥보드까지 조심해서 걸어야 해 무언가를 보면서 걷는다는 건 너무 위험한 일이다.

요즘 출퇴근길에 자주 이용하고 있는 교보eBook 앱이 책을 읽어주는 TTS 음성지원 서비스를 제공해주긴 하는데, 목소리에 감정이 실려있지는 않다 보니 문학작품을 들으며 걸을 때는 집중이 잘 되지 않아 약간의 아쉬움이 생기더라.

2. 그렇게 대안을 찾다가 네이버 오디오클립(
@naver_audioclip)이 팟캐스트만 서비스하는 줄 알았는데 오디오북까지 서비스한다는 걸 알게 되었고, 얼마 전부터 푹 빠져있는 김초엽 작가의 <원통 안의 소녀> 오디오북을 바로 영구 소장본으로 구매해봤다. 친숙한 목소리인 오정연 님의 낭독 샘플까지 들어보고 나니 eBook의 음성지원과는 확실히 다른 퀄리티라는 게 느껴져 망설이지 않고 구매하게 되었다.

마침 이 작품은 두 명의 인물만을 중심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한 사람의 낭독만으로도 자연스럽게 몰입할 수 있어 생애 첫 오디오북의 경험이 나쁘지 않게 다가왔다.

3. "원통 안의 소녀"인 지유는 공기 중에 떠다니는 나노봇들이 날씨나 교통 등을 제어할 수 있게 된 세상에서 유일하게 나노봇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이다. 이 세계에서는 유전자 조작도 가능해 우리가 흔히 아는 대부분의 알레르기를 치유할 수 있게 되었지만, 지유의 경우에만 발전한 기술과 반대로 치유 불가능한 신종 알레르기가 생겨버린 케이스다.

하지만, 형태만 다를 뿐이지 원통 안에 갇힌 건 지유 뿐만이 아니었다. 나노봇으로부터 소외된 존재가 자기 말고도 있다는 걸 알게 된 뒤로 지유의 일상은 새로워진다. 모두에게서 동정받던 존재였던 지유가 유일하게 자신을 동정하지 않는 또 다른 존재를 만나게 되면서 여태껏 경험해보지 못한 공감을 받게 되는 과정이 풋풋하게 그려진다.

비록 둘은 끝내 만나지 못하지만, 헤어지면서 각자의 원통으로부터 서로를 잠시나마 해방시켜주려는 모습 속에서 나는 또 다른 사랑의 방식 하나를 새로 배울 수 있었다.

반응형

'걸으며 생각한 것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걸으며 생각한 것들 (6)  (0) 2021.03.09
걸으며 생각한 것들 (5)  (0) 2021.03.07
걸으며 생각한 것들 (3)  (0) 2021.03.06
걸으며 생각한 것들 (2)  (0) 2021.02.09
걸으며 생각한 것들 (1)  (0) 2021.0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