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으며 생각한 것들 (8)

김재원

·

2021. 3. 17. 10:00

걷다가 지쳐서 탄, 한강 다리 위를 지나는 버스 안에서 © 읽고.걷고.쓰고

엄마와 같이 네발자전거에 붙였던 보조 바퀴를 떼고, 처음 두발자전거를 익힐 때였다.
엄마가 자전거 뒤쪽을 잡아주고, 나는 자전거 위에서 균형을 잡으며 앞으로 나아가는 연습을 시작했다.

두어 시간이 지나도 엄마와 나의 도전은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 뒤에선 자전거를 잡아주고, 앞에선 페달을 열심히 밟아보는데, 내가 잘 간다 싶을 때쯤 엄마가 손을 놓으면 난 얼마 안 가 넘어졌고, 계속 이 사이클이 반복되기만 했다. 해가 지면서 날은 슬슬 어두워져 가고 있었다.


때마침 복도식 아파트 같은 층에 살던, 나보다 몇 학년 위인 형이 실패를 반복하고 있던 우리의 옆을 지나가고 있었다.

"00아, 두발자전거 탈 줄 아니? 얘 자전거 타는 것 좀 가르쳐줄 수 있을까?"

엄마도 슬슬 지쳐가고 있었는지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형에게 도움의 손길을 구했다.

(그땐 시크하단 표현을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엄청) 시크한 표정으로 터벅터벅 걸어오던 형은 나에게 무미건조하면서도 명료하게 답을 건네고선 휙-하고 제 갈 길을 다시 가버렸다.

"네가 오른발잡이면, 항상 오른쪽 페달을 올리는 데서 시작해.
 그 페달에 오른발을 올리고 최대한 힘차게 내딛으면, 자전거는 알아서 굴러갈 거야. 난 그렇게 타니까 자전거가 쉬워지더라."

그렇게 난 형이 일러준 대로 오른쪽 페달부터 돌려 올렸고, 페달에 발을 올려 최대한 힘껏 내딛어봤다. 그 순간, 나는 엄마가 손으로 뒤를 잡아주지 않아도 공원 한 바퀴를 순식간에 달려 나갈 수 있게 됐다. 생각보다 단순한 방법이었지만, 순서를 알고 차근차근 따라 하면 금방 성공할 수 있다는 걸 난 그때 처음 경험했다. 그리고 이 공원이 이렇게 넓었나 싶을 정도로 나의 자전거는 빠르고 멀리 나아갔다.

덕분에 한껏 지쳐있던 우리 엄마도 그제서야 활짝 웃으며 나의 활주를 흐뭇하게 바라보셨다.


물론 형이 알려준 답이 자전거를 타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그래도 형이 알려준 것처럼 우리 주변의 단순한 삶의 노하우들은 우리를 또 다른 세계로 인도해준다.

시크했던 옆집 형이 열 살짜리 꼬마에게 가르쳐주었던 자전거 타는 법처럼 나 역시도 살면서 자연스레 발견한 나만의 노하우들이 생겼다. 읽기와 걷기, 쓰기부터 내가 겪었던 여러 경험들을 통해 깨닫고 쌓아온, 대단하진 않아도 작고 단순해 누구나 시도해볼 수 있는 삶의 노하우들 말이다.

앞으로 난 그런 노하우들을 더욱 단단히 다져 많은 사람들에게 나눠보고 싶다.

반응형

'걸으며 생각한 것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걸으며 생각한 것들 (7)  (0) 2021.03.16
걸으며 생각한 것들 (6)  (0) 2021.03.09
걸으며 생각한 것들 (5)  (0) 2021.03.07
걸으며 생각한 것들 (4)  (0) 2021.03.06
걸으며 생각한 것들 (3)  (0) 2021.0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