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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으며 생각한 것들

걸으며 생각한 것들 (8)

엄마와 같이 네발자전거에 붙였던 보조 바퀴를 떼고, 처음 두발자전거를 익힐 때였다. 엄마가 자전거 뒤쪽을 잡아주고, 나는 자전거 위에서 균형을 잡으며 앞으로 나아가는 연습을 시작했다. ⠀ 두어 시간이 지나도 엄마와 나의 도전은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 뒤에선 자전거를 잡아주고, 앞에선 페달을 열심히 밟아보는데, 내가 잘 간다 싶을 때쯤 엄마가 손을 놓으면 난 얼마 안 가 넘어졌고, 계속 이 사이클이 반복되기만 했다. 해가 지면서 날은 슬슬 어두워져 가고 있었다. 때마침 복도식 아파트 같은 층에 살던, 나보다 몇 학년 위인 형이 실패를 반복하고 있던 우리의 옆을 지나가고 있었다. "00아, 두발자전거 탈 줄 아니? 얘 자전거 타는 것 좀 가르쳐줄 수 있을까?" 엄마도 슬슬 지쳐가고 있었는지 마지막이라는 심..

2021.03.17 게시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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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으며 생각한 것들

걸으며 생각한 것들 (7)

올해 말까지 D&DEPARTMENT JEJU에서 전시로도 선보이고 있는, 의 첫 구절부터가 인상 깊다. "디자인이 롱 라이프가 되었습니다." 디자인은 의미만 변하고 있는 게 아니라 적용되는 범위와 방식도 다양해지고 있지 않나. 그런 점에서 나가오카 겐메이가 제안하는 #롱라이프디자인의 개념은 진지하게 파고들어 볼 가치가 있었다. ⠀ 파타고니아나 프라이탁처럼 지속가능성을 기본 전제로 하는 패션 브랜드들을 보면, 하나의 제품에 높은 가격을 매기는 대신 한 번의 구매만으로도 그 제품을 오래 소비할 수 있게 상당한 고민을 거쳐 제품을 생산한다. ⠀ 이렇게 생산한 제품은 환경 문제를 키우는 무책임하고 가벼운 소비로부터 소비자가 벗어날 수 있게 돕는 건 물론이고, 구매 이후에도 수거나 수선, 업사이클링 등의 방법으로..

2021.03.16 게시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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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으며 생각한 것들

걸으며 생각한 것들 (6)

1. 심연의 우주 속에서 한없이 작아진 나머지 불안에 떨고 있던 로밀리를 쿠퍼가 다독여주는 장면이 있다. 쿠퍼는 그에게 자신감을 가지라며 시덥잖은 말들을 늘어놓다가, 지구 최고의 기술로 만들어진 우주선에서 가장 아날로그스런 기계로 남은 위로를 대신하며 조용히 자리를 뜬다. ⠀ 아마도 우주로 떠나오기 전, 구식 워크맨으로 녹음해둔 지구의 소리일 텐데. 들어보면 별거 아닌 빗소리, 벌레의 울음소리, 천둥 치는 소리지만 불안감에 잔뜩 긴장해있던 로밀리는 이 소리들을 듣자 이내 풀어지고야 만다. ⠀ 2. 이윽고 가만히 자세를 고쳐 앉아 자연의 소리에 집중하던 그의 모습은 마치 내가 우울했던 나날들 가운데 툭하면 산책하며 걷던 모습과 비슷하다. 갑작스레 우울감이 엄습해 과거부터 미래까지의 온갖 걱정들을 긁어모아 ..

2021.03.09 게시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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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으며 생각한 것들

걸으며 생각한 것들 (5)

스스로 졸라맨 생활비가 살짝 쪼들려서 장기하의 인터뷰가 실린 '일간 이슬아(@sullalee)' 한여름호를 아직 구매하지 못했다. 대신 얼마 전 EBS 이스라디오에 출연한 장기하(@kihachang)의 인터뷰를 들으며 오늘의 걷기를 시작했다. ⠀ 서대문구 창천동에서 시작해 신촌동-대신동을 거치고, 이화여대의 꼭대기와 안산도시자연공원의 돌담길을 지나 서촌에 다다를 때까..

2021.03.07 게시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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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으며 생각한 것들

걸으며 생각한 것들 (4)

1. 꾸준히 읽고 걷는 게 삶에 적절한 ON/OFF 스위치가 되어주는 것에 깊이 감사해하는 요즘이지만, 24시간으로 한정된 회사원의 하루에 마음껏 읽고 걷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읽기와 걷기를 동시에 할 수 있으면 더없이 좋겠지만, 내가 사는 동네는 도심 한가운데이기 때문에 항상 차와 자전거, 전동 킥보드까지 조심해서 걸어야 해 무언가를 보면서 걷는다는 건 너무 위험한 일이다. ⠀ 요즘 출퇴근길에 자주 이용하고 있는 교보eBook 앱이 책을 읽어주는 TTS 음성지원 서비스를 제공해주긴 하는데, 목소리에 감정이 실려있지는 않다 보니 문학작품을 들으며 걸을 때는 집중이 잘 되지 않아 약간의 아쉬움이 생기더라. ⠀ 2. 그렇게 대안을 찾다가 네이버 오디오클립(@naver_audioclip)이 팟캐스트만 ..

2021.03.06 게시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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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으며 생각한 것들

걸으며 생각한 것들 (3)

1. 장기하가 혁오의 'Silverhair Express'를 리믹스하면서 내레이션으로 쓴 구절들을 듣고, 뭐지? 싶었다. 마치 한창 SF/판타지 소설에 심취해있었던 중학생 때로 돌아간 것처럼 간만에 상상이란 걸 하게 되더라. ⠀ '예전에는 헤어진다는 것이 이런 의미가 아니었어 / 적어도 그때는 같은 하늘 아래에 있었지'라거나 '그래도 당신들은 같은 우주 안에 있는 것이라고 / 그 사실을 위안 삼으라고' 같은 구절들은 우주판 Black Mirror가 나온다면 있을 법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난 이 구절들이 김초엽이라는 작가가 쓴 소설의 일부라는 걸 찾게 되었고, 이 작가와 소설에 대해 더 알고 싶어졌다. ⠀ 2. 마침 지난 한남동 걷기 모임의 종착지는 스틸북스. 난 김초엽의 소설이 생각났고, 책..

2021.03.06 게시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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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으며 생각한 것들

걸으며 생각한 것들 (2)

얼마 전, 픽사(@pixar)의 공식 SNS 채널에 재밌는 이미지가 하나 올라왔다. 영화에는 등장하지 않았지만, ⌜소울⌟의 주인공 Joe가 오선지에 적어낸, 라는 제목의 이미지였다. (아마 영화가 끝난 시점 이후에 Joe가 혼자서 작성한 거겠지?) 영어로 되어 있긴 한데, 호다닥 번역해보니 아래와 같은 내용이더라. ⠀ - 엄마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자. - 제자인 Connie가 트롬본을 계속 연습할 수 있도록 돕자. - 맨홀을 조심하자. (ㅋㅋㅋㅋ) - 지하철에서 버스킹하는 뮤지션들에게 팁을 주자. - "재징!"을 연습하자. - 바버샵의 Dez에게 삶에 관한 질문을 더 많이 하자! - 피자를 더 많이 먹자. - 살아있는 모든 순간을 즐기자! 삶과 죽음의 경계를 경험하고 난 Joe였기에, 새해 다짐이 '꿈..

2021.02.09 게시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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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으며 생각한 것들

걸으며 생각한 것들 (1)

1월의 마지막 날, 한강 걷기에 나섰다. 걷는 건 내가 가장 애정하는 취미이자, 켜켜이 쌓여만 있던 생각들을 정돈하고 다듬기에 매우 좋은 방법 중 하나다. 요즘 난 매일 걷는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하고, 걸으며 생각한 것들로 남은 하루를 채우곤 한다. 얼마 전, 친구들과의 채팅방엔 뜬금없이 질문이 하나 올라왔다. "나는 무슨 일을 해야 행복하게 돈도 벌까?" ⠀ 명확한 답을 바라고 올린 것 같진 않아 보였지만, 그냥 지나칠 수도 없는 질문이었다. 사실은 나도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을 은연중에 항상 찾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나도 이 질문에 숟가락을 얹어 친구들에게 되물었다. "너네는 행복이 뭐라고 생각하는데?" ⠀ 우린 심리학에서 내린 행복의 정의부터 '행복'이라는 제목의 노래, 최근에 각자 행복을 느낀 순간..

2021.01.31 게시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