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밀밀|‘3포 세대’를 내다본 모큐멘터리

김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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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3. 28. 00:45

영화 「첨밀밀」은 1986년부터 1995년까지 딱 10년간의 이야기이다.

이는 홍콩의 중국으로의 반환 협정이 마무리된 1984년부터 이 협정에 따라 실제 반환된 1997년까지의 시기와 대략적으로 맞물린다는 점에서 단순한 멜로물이 아닐 것이라는 의문점을 불러일으킨다. 영국령 홍콩 시절부터 서양의 자본주의가 본격적으로 도입된 홍콩은 사회주의 공화국을 표방하는 중국으로 반환되고 나서도 특별 행정구역으로 지정되어 50년 동안은 기존의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방침이 적용되었다. 즉, 그 당시 중국인들에게 홍콩은 같은 나라임에도 훨씬 성공의 가능성이 높은 곳으로써 각광받았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 영화 ⌜첨밀밀⌟

영화의 두 주인공인 소군(여명 분)과 이교(장만옥 분)는 이러한 가능성을 좇아 각자가 자란 고향을 떠나 홍콩으로 이주한 사람들이었다. 얄팍한 역사 상식을 끌어오자면, 당시의 중국은 등소평(덩샤오핑)이 문화혁명을 계기로 적극적인 개혁개방을 내세워왔고, 그 영향을 받은 많은 중국인들은 '아메리칸 드림' 비슷한 심정으로 홍콩이나 해외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영화 시작 부분에서부터 열차를 타고 이제 막 홍콩에 도착한 소군의 모습을 비춰주는 것은 이러한 당시 상황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일 것이다.

그렇게 이주해 고모의 집에 얹혀살기 시작한 소군은 하찮은 허드렛일을 시작으로 맥도날드 아르바이트를 거쳐 식당 주방 일까지 하게 되면서 점차 홍콩에서의 삶에 적응해나간다. 반면, 이교는 더 큰돈을 벌고자 하는 욕심으로 보다 다양한 수단에 손대기 시작한다. 어수룩한 이주민들에게 엉터리 영어학원을 소개해주고 커미션을 받는다거나, 새해를 맞아 공원 어귀에서 등려군의 음반을 파는 등 본업 이외의 일을 만들어서 하는 그녀의 모습은 소군에 비해 훨씬 이해타산적으로 비춰지는데, 이후 그녀는 주식 투자에 실패하면서 성실히 모아온 돈의 대부분을 잃고 만다.

© 영화 ⌜첨밀밀⌟

여기서 영화는 자본주의의 벽에 부딪힌 소시민의 안타까운 현실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전까지만 해도 돈을 벌어 광주에 부모님의 집을, 홍콩에 본인의 집을 짓고, 빌딩도 올리겠다던 그녀가 돈을 잃게 되니 그만큼 다시 메우기 위해 안마사라는 고된 길을 택하게 된 것이다. 더는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 다른 사람들에게 밝히기 힘들어졌음에도 포기할 순 없는 길로 들어선 이교의 모습은 스스로의 자존심을 돈과 바꾸는 흡사 '돈의 노예'가 되어 가고 있었다.

결국 그녀는 안마시술소에서 손님으로 만난 삼합회의 두목과의 결혼으로 불안정한 삶으로부터 탈출하게 되며, 동시에 소군은 고향에서 자신을 좇아온 연인과 결혼하여 평범한 가정을 꾸리게 된다. 이는 사회주의적 세계에 살던 사람들이 처음 자본주의를 받아들이면서 생기는 명암을 극단적인 두 사례로 표현한 것이다. 특히 이교의 경우, 감정적으로는 소군과의 사랑을 이어나가고 싶었을지 모르나, 돈의 맛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나머지 화류계나 거부(巨富)와의 결혼을 뿌리칠 수 없었다고 본다. 예나 지금이나 자본주의에서 살아가는 청춘들에게 돈이 가져다주는 힘은 가치관을 어지럽힐 정도로 강력했던 것이다.

© 영화 ⌜첨밀밀⌟

미처 다 언급하지 못할 정도로 배배 꼬인 이 둘의 운명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의 재회를 통해 희망적으로 끝을 맺는다. 그러나 과연 다시금 돈의 문제,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의 문제가 드리운다면 이 둘은 애틋한 감정을 유지해낼 수 있을까? 이 영화는 어쩌면 우리에게 '3포 세대', 아니 이제는 'N포 세대'를 예견하고자 만들어진 모큐멘터리(Mockumentary)가 아닐까?

p.s. 이 글은 대학교 4학년이었던 제가 교양과목인 '중국 언어와 문화 1' 과목에서 영화 「첨밀밀」에 대한 후기로 제출했던 글임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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