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그곳에선 다시 건강하세요.]
김재원
·2021. 2. 22. 10:00
어느 병실에 두 손을 꼭 맞잡은 노부부가 있다.
아니, 가까이 들여다보니 노부인이 남편의 손을 꼭 붙들고 있는 편이 맞겠다.
"할아버지, 집에 얼른 같이 가야지.
금방 일어나서 같이 가기로 했잖아요."
나의 외할머니는 아직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하고 계신다. 그럴 수 없을 정도로 그녀에게 남편의 부재는 너무나도 큰 공허감을 안기는 일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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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찍이 바라보던 나도 조용히 침상 반대편으로 발걸음을 옮겨 외할아버지의 하얘진 손을 잡아본다. 큰 키와 건장한 체격의 할아버지가 이제는 허리를 일으킬 힘조차 없는 상태로 누워계신다. 손은 여전히 크지만, 이제는 차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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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궂은 폐암은 할아버지를 몇 년째 괴롭혀왔고, 몇 차례의 오진과 반복되는 입·퇴원은 결국 그를 지치게 하였을 터. 그렇게 다른 가족들은 서서히 그 생의 마지막을 받아들여 가고 있을 때쯤 나의 외할머니만큼은 매일 밤낮을 기도로 지새고 서툰 손으로 간호하며 그가 다시 돌아오기를 꿋꿋이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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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입시, 대학생활, 취업 등을 핑계로 외가를 자주 찾아뵙지 못했던 큰손주는 외할아버지의 손을 잡아본 기억이 많지 않다. 그저 만남과 헤어짐마다 나눈 짧고 어색한 악수 정도가 아니면 그의 손을 잡아본 적이 드물고 낯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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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제서야 이렇게 손을 잡아보는 걸까, 하는 후회와 이제라도 사랑한다고 말할 자격이 있을까, 하는 반성이 적당히 섞인 감정으로 나도 꽤 오랫동안 그의 오른손을 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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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그의 손을 잡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는 걸 그땐 몰랐다. 떨리는 엄마의 목소리로 소식을 전해 듣고, 서둘러 도착한 빈소에서 마주한 그의 영정은 내가 가끔씩 찾아뵐 때마다 묵묵히 반겨주셨던 그때의 그 눈빛을 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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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하고도 하나가 되어서야 할아버지의 묵묵한 그 눈빛을 사랑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 못난 손주는 이렇게나마 그를 추억하고 그와의 마지막 기억을 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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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그곳에선 다시 건강하세요.
제가 많이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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