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으로 30년을 살아낸 것에 대한 단상]

김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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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2. 19. 23:55

아기 때의 나 © 읽고.걷고.쓰고

열 살 땐 그 자체만으로도 사랑스런 아이였고, 스무 살 땐 사랑을 시작할 줄 아는 소년이었던 내가 또 한 번의 십 년이 지나 서른 살이 되어서는 사랑하던 사람들에게 입은 상처들로 감정이 마모되어 버린 채 털-썩 주저앉아 있다.

마모된 톱니의 빈자리는 우울과 무기력이 들어차 앉아 '나'라는 바퀴가 돌아가지 않게 하고선 나를 비웃곤 하는데, 세상도 그런 내게 왜 예전만큼 빨리 움직이지 못하냐며 다그치기만 한다.

그런 비소(非笑)와 잔소리를 피해 보려고 스스로를 깊은 바다에 던져놓고 가라앉히며 지난 1년을 보냈다. 심연의 맨 밑바닥에서 해수면을 높이 올려다보며 아무것도 하지 못할 때의 내게 누군가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을 허비하는 거라 말했다. 아마 그는 그 순간이 내 인생에서 가장 허망함이 가득 찬 순간였음을 모르고 하는 소리였겠지.

사랑을 말하는 종교의 신도들이 상처를 입히고, 상처를 입은 영혼들은 믿음의 길을 잃는 이곳에서 20대를 살아낸 내 결론은 '거짓된 사랑에 흔들리지 말고, 어제보다 오늘 딱 1밀리미터씩만 나은 내가 되자'는 것.

조금 더 나아갈 수 있다면,
'내가 받은 상처를 다른 사람들에게만큼은 물려주지 말자'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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