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으며 생각한 것들 (1)
김재원
·2021. 1. 31. 22:00
1월의 마지막 날, 한강 걷기에 나섰다. 걷는 건 내가 가장 애정하는 취미이자, 켜켜이 쌓여만 있던 생각들을 정돈하고 다듬기에 매우 좋은 방법 중 하나다. 요즘 난 매일 걷는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하고, 걸으며 생각한 것들로 남은 하루를 채우곤 한다.
얼마 전, 친구들과의 채팅방엔 뜬금없이 질문이 하나 올라왔다.
"나는 무슨 일을 해야 행복하게 돈도 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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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확한 답을 바라고 올린 것 같진 않아 보였지만, 그냥 지나칠 수도 없는 질문이었다. 사실은 나도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을 은연중에 항상 찾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나도 이 질문에 숟가락을 얹어 친구들에게 되물었다. "너네는 행복이 뭐라고 생각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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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심리학에서 내린 행복의 정의부터 '행복'이라는 제목의 노래, 최근에 각자 행복을 느낀 순간들까지... 행복에 대한 자기만의 살을 조금씩 붙여가며 대화를 이어보았다. 그러다 한 친구가 올해로 102세가 된 노교수의 인터뷰 기사를 공유해주었는데, 이걸 읽고서 개인적으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인터뷰의 제목은 "100년 살아보니 알겠다, 절대 행복할 수 없는 두 부류"였는데, 김형석 명예교수(연세대 철학과)는 행복해지고 싶어도 행복해질 수 없는 사람들을 크게 두 부류로 나눴다. 1) 정신적 가치를 모르는 사람과 2) 이기주의자, 즉 물질적 가치만 알고 만족할 줄 모르거나 자신만을 위해 사느라 인격을 갖추지 못하는 사람이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이었다.
자기 밥그릇 하나 챙기기도 버거운 세상에 이게 무슨 소리냐 싶으면서도 당장 나부터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던 순간들을 돌이켜보니까 또 금방 수긍이 된다. 밥그릇 하나 챙겨보겠다고 아등바등 살다 보면 남보다 더 챙기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고, 그 욕심에 갇혀버리고 나면 정작 인격의 그릇을 키우지 못해 담을 수 있는 행복이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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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서른을 넘기면서 '누군가'가 된다거나 '무언가'를 가져야겠다는 압박감에 조금씩 사로잡히고 있던 나로서는 반성하게 되는 대목이 아닐 수 없었다. 내 딴에는 그게 삶에 긍정적인 원동력을 가져다줄 거라 믿었는데, 실은 내 인격과 행복을 옭아매는 것이었단 걸 모른 채 살고 있었던 거다.
한편, 주말에 본 영화 ⌜소울⌟에서도 비슷한 감명을 받았다. 얼떨결에 영혼 '22'의 멘토가 된 주인공은 곧 태어나야 할 그의 인생 목표를 찾아준답시고 여러 직업을 경험해보게 하면서, (본인이 그랬던 것처럼) 구체적인 직업이나 특별한 목표지점을 결정하는 것이야말로 인생을 완성하는 불꽃이라며 밀어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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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앞선 노교수의 인터뷰에서도 그렇고, 우리의 짧은 삶을 되돌아봐도 어떤 직업이 되는 것이나 어떤 자산규모에 도달하는 것만으로는 결코 우리의 인생을 완성할 수 없다는 걸 우린 이미 알고 있다.
특히 그런 류의 목표 의식을 여태 거부해오며, 태어나는 것으로부터 도망치기 바빴던 영혼 '22'가 탄생의 불꽃을 갖게 된 것 역시 (목표 의식을 찾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일상 그 자체에 대한 감사와 만족, 이웃/가족과의 대화와 사랑을 경험하는 과정에서 비롯된 걸 보면, 물질적인 목표에 매몰되기보다는 일상 그 자체를 목적이자 만족으로 삼아야겠다는 마음가짐을 다시금 다짐하게 된다.
일상 속 행복을 찾아 늘리고 만족하는 삶, 그리고 그 행복의 그릇을 주변 사람들과 나누는 삶.
그런 삶이야말로 행복한 삶으로 향하는 길이라는 게 오늘 두 시간을 넘게 걸으며 내린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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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먼저 큰 그릇이 되어야 큰 행복을 담을 수 있다"는 김형석 교수의 말처럼 올해는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을 위해 수신(修身)과 자기 탐색, 무엇보다 내 일상의 소중함에 더욱더 집중하는 한 해를 살아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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