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으며 생각한 것들 (2)

김재원

·

2021. 2. 9. 01:40

얼마 전, 픽사(@pixar)의 공식 SNS 채널에 재밌는 이미지가 하나 올라왔다.
영화에는 등장하지 않았지만, ⌜소울⌟의 주인공 Joe가 오선지에 적어낸, <Joe's New Year's Resolutions>라는 제목의 이미지였다. (아마 영화가 끝난 시점 이후에 Joe가 혼자서 작성한 거겠지?)

© 영화 ⌜소울⌟

영어로 되어 있긴 한데, 호다닥 번역해보니 아래와 같은 내용이더라.

<Joe의 새해 다짐>

- 엄마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자.
- 제자인 Connie가 트롬본을 계속 연습할 수 있도록 돕자.
- 맨홀을 조심하자. (ㅋㅋㅋㅋ)
- 지하철에서 버스킹하는 뮤지션들에게 팁을 주자.
- "재징!"을 연습하자.
- 바버샵의 Dez에게 삶에 관한 질문을 더 많이 하자!
- 피자를 더 많이 먹자.
- 살아있는 모든 순간을 즐기자!

삶과 죽음의 경계를 경험하고 난 Joe였기에, 새해 다짐이 '꿈에 그리던 무대에서 공연해보자'와 같은 원대한 꿈보다는 '엄마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자', 'Connie가 트롬본을 계속 연습할 수 있도록 돕자', '피자를 더 많이 먹자'와 같은 일상적인 목표들로 채워진 것을 볼 수가 있다.


물론 그중 가장 웃긴 건 맨홀을 조심하자는 거였지만,
가장 핵심인 건 아무래도 "재징!"을 연습하자가 아닐까 싶다.

원래 재징(Jazzing)은 재즈의 즉흥적이고 돌발적인 전개 방식을 의미하는 용어로, 쉽게 말해 즉흥 연주(Improvisation)를 뜻한다. 서로 독주로 제각기 다른 개성을 뽐내다가도 다시 합주로 돌아와 어우러지는 재즈의 연주 방식 중 하나라고 이해하면 충분하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재징!"은 Joe의 몸에 들어온 영혼 '22'가 (그전까진 삶의 뚜렷한 목표를 찾지 못하다가) 실제 세상에서 일상 속 소소한 행복을 겪어가면서 느낀 '삶의 매 순간을 즐기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로 쓰인다. 삶 그 자체만으로도 살아가기 위해 가장 중요한 목표라는 것이며, 세상과의 소통과 합주 그 자체만으로도 삶의 충분한 이유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역설적이게도 Joe의 죽음은 Joe가 새롭게 태어나는 과정이었다. 끝으로 끝나고 마는 게 아니라, 또 하나의 시작으로 만드는 것. 그것이 지금의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걸 픽사는 모두에게 말하고 싶은 게 아닐까.

그래서 어느새 2021년의 1/12가 지났다고 하더라도, 나만큼은 전혀 개의치 않을란다. 연초, 연말처럼 누군가 정해놓은 시작과 끝에 얽매이기보다는 그냥 매 순간순간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즐기는 것만이 내 삶을 행복하게 만드는 길임을 깨달은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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