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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으며 생각한 것들

걸으며 생각한 것들 (5)

스스로 졸라맨 생활비가 살짝 쪼들려서 장기하의 인터뷰가 실린 '일간 이슬아(@sullalee)' 한여름호를 아직 구매하지 못했다. 대신 얼마 전 EBS 이스라디오에 출연한 장기하(@kihachang)의 인터뷰를 들으며 오늘의 걷기를 시작했다. ⠀ 서대문구 창천동에서 시작해 신촌동-대신동을 거치고, 이화여대의 꼭대기와 안산도시자연공원의 돌담길을 지나 서촌에 다다를 때까..

2021.03.07 게시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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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으며 생각한 것들

걸으며 생각한 것들 (4)

1. 꾸준히 읽고 걷는 게 삶에 적절한 ON/OFF 스위치가 되어주는 것에 깊이 감사해하는 요즘이지만, 24시간으로 한정된 회사원의 하루에 마음껏 읽고 걷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읽기와 걷기를 동시에 할 수 있으면 더없이 좋겠지만, 내가 사는 동네는 도심 한가운데이기 때문에 항상 차와 자전거, 전동 킥보드까지 조심해서 걸어야 해 무언가를 보면서 걷는다는 건 너무 위험한 일이다. ⠀ 요즘 출퇴근길에 자주 이용하고 있는 교보eBook 앱이 책을 읽어주는 TTS 음성지원 서비스를 제공해주긴 하는데, 목소리에 감정이 실려있지는 않다 보니 문학작품을 들으며 걸을 때는 집중이 잘 되지 않아 약간의 아쉬움이 생기더라. ⠀ 2. 그렇게 대안을 찾다가 네이버 오디오클립(@naver_audioclip)이 팟캐스트만 ..

2021.03.06 게시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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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으며 생각한 것들

걸으며 생각한 것들 (3)

1. 장기하가 혁오의 'Silverhair Express'를 리믹스하면서 내레이션으로 쓴 구절들을 듣고, 뭐지? 싶었다. 마치 한창 SF/판타지 소설에 심취해있었던 중학생 때로 돌아간 것처럼 간만에 상상이란 걸 하게 되더라. ⠀ '예전에는 헤어진다는 것이 이런 의미가 아니었어 / 적어도 그때는 같은 하늘 아래에 있었지'라거나 '그래도 당신들은 같은 우주 안에 있는 것이라고 / 그 사실을 위안 삼으라고' 같은 구절들은 우주판 Black Mirror가 나온다면 있을 법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난 이 구절들이 김초엽이라는 작가가 쓴 소설의 일부라는 걸 찾게 되었고, 이 작가와 소설에 대해 더 알고 싶어졌다. ⠀ 2. 마침 지난 한남동 걷기 모임의 종착지는 스틸북스. 난 김초엽의 소설이 생각났고, 책..

2021.03.06 게시됨

[할아버지, 그곳에선 다시 건강하세요.] 포스팅 썸네일 이미지

IRL

[할아버지, 그곳에선 다시 건강하세요.]

어느 병실에 두 손을 꼭 맞잡은 노부부가 있다. 아니, 가까이 들여다보니 노부인이 남편의 손을 꼭 붙들고 있는 편이 맞겠다. "할아버지, 집에 얼른 같이 가야지. 금방 일어나서 같이 가기로 했잖아요." 나의 외할머니는 아직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하고 계신다. 그럴 수 없을 정도로 그녀에게 남편의 부재는 너무나도 큰 공허감을 안기는 일이겠지. ⠀ 멀찍이 바라보던 나도 조용히 침상 반대편으로 발걸음을 옮겨 외할아버지의 하얘진 손을 잡아본다. 큰 키와 건장한 체격의 할아버지가 이제는 허리를 일으킬 힘조차 없는 상태로 누워계신다. 손은 여전히 크지만, 이제는 차갑다. ⠀ 얄궂은 폐암은 할아버지를 몇 년째 괴롭혀왔고, 몇 차례의 오진과 반복되는 입·퇴원은 결국 그를 지치게 하였을 터. 그렇게 다른 가족들은 서서히 ..

2021.02.22 게시됨

[마지막 빨랫감을 맡기고 오는 길.] 포스팅 썸네일 이미지

IRL

[마지막 빨랫감을 맡기고 오는 길.]

백양 세탁소에 마지막 빨랫감을 맡기고 오는 길. 겉잡을 수 없이 오르는 가게 월세 때문에 오랫동안 지켜온 자리를 떠나게 된 것에 사장님은 연신 미안하다고 하셨다. ⠀ 오르는 월세를 더는 붙잡을 수 없어 단골 세탁소가 떠나야 하듯이, 시간도 붙잡을 수 없이 흘러 벌써 2월을 떠나보내야 하고, 이제 몇 분 뒤면 3월이 그 빈곳을 채우게 된다. * 할 일 목록 ─ 3월 17일 전에 빨래 찾기

2021.02.21 게시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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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과 마음이 무거워도]

한 친구와 하얗게 눈 덮인 한라산을 정상까지 등반했던 게 벌써 5년 전이다. 회사 생활을 핑계로 몸 건강의 관리가 그간 소홀했던 걸까. 5년 전에 비해 내 몸은 무거워져 있었고, 그 때문인지 다시 산을 오르면서 속도나 지구력이 낮아진 게 확실히 느껴졌다. 결국 등반을 해내긴 했다. 물론 같이 갔던 친구들로부터 약간 뒤처지긴 했지만, 무거워진 내 속도를 인정하고 적잖이 쉬어가면서 차근차근 올라가다 보니 어느덧 백록담에 닿긴 하더라. (xx 힘들긴 했지만...) '조금 느려도 괜찮다.' 무엇보다 이 생각을 무수히 반복했다. 그 덕분에 무리하지 않고 끝까지 오를 수 있었던 것 같고, 5년 전에는 눈에 덮여서 보지 못했던 한라산 곳곳의 아름다운 모습들까지도 보고 만지며 느낄 수 있었다. ⠀ 만약 내 속도에 맞지..

2021.02.20 게시됨

[만으로 30년을 살아낸 것에 대한 단상] 포스팅 썸네일 이미지

IRL

[만으로 30년을 살아낸 것에 대한 단상]

열 살 땐 그 자체만으로도 사랑스런 아이였고, 스무 살 땐 사랑을 시작할 줄 아는 소년이었던 내가 또 한 번의 십 년이 지나 서른 살이 되어서는 사랑하던 사람들에게 입은 상처들로 감정이 마모되어 버린 채 털-썩 주저앉아 있다. ⠀ 마모된 톱니의 빈자리는 우울과 무기력이 들어차 앉아 '나'라는 바퀴가 돌아가지 않게 하고선 나를 비웃곤 하는데, 세상도 그런 내게 왜 예전만큼 빨리 움직이지 못하냐며 다그치기만 한다. ⠀ 그런 비소(非笑)와 잔소리를 피해 보려고 스스로를 깊은 바다에 던져놓고 가라앉히며 지난 1년을 보냈다. 심연의 맨 밑바닥에서 해수면을 높이 올려다보며 아무것도 하지 못할 때의 내게 누군가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을 허비하는 거라 말했다. 아마 그는 그 순간이 내 인생에서 가장 허망함이 가득..

2021.02.19 게시됨